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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박동은 부회장 "펀드레이징은 대단히 프로페셔널한 것"
유니세프에 24년 바쳐… 대표사무소에서 국가위원회로 승격된 나라 한국 밖에 없어
2013년 02월 26일 (화) 박성민 기자 smpark@jkn.co.kr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는 '모든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또한 유니세프는 "어린이가 살기좋은 세상이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말한다. 유니세프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또 유니세프의 로고에 많은 이들이 매우 친숙할 것이다. 특히나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FC바르셀로나의 유니폼에 세겨진 로고에 너무나 익숙하다. 유니세프는 지난 2006년 FC바르셀로나와 유니폼 스폰서쉽을 체결했다. 유니세프와 FC바르셀로나와의 협약은 스포츠계와의 파트너쉽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협약과 관련해 FC바르셀로나는 에이즈에 노출된 전 세계 어린이를 돕기 위해 5년간 구단 수입의 0.7%를 유니세프에 지원키로 약속했었다.

지난 21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박동은 부회장을 만나 한국위원회의 그간의 행적과 박 부회장의 유니세프에 대한 애정과 열정에 대해 들어봤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박동은 부회장>

유니세프는 지난 1946년 국제연합총회의 결의에 따라 아동과 청소년들의 구호를 위해 설립된 기구이다. '차별 없는 구호의 정신'으로 전 세계의 개발도상국 어린이를 지원해 왔다.

국가간의 우호를 증진시킨 공로로 지난 1965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유니세프는 본부, 선진국형 조직인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ttee), 국가사무소(Field Office), 지역사무소(Regional Office)로 나누어 진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설립된 건 지난 1994년. 이후 1950년 3월 25일 대한민국 정부와 기본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에서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현재 전 세계 156개국에 대표사무소가 있고 36개국에 국가위원회가 있는데, 대표사무소에서 국가위원회로 승격된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박 부회장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사업은 길게 얘기할 필요없이 생존과 보호, 발달, 참여다. 이 권리 안에 집약돼 있고 우리 사업도 여기에 준해 있다. 일년에 한 1천만 명씩 어린아이가 억울하게 죽었다. 생존사업 안에 보건·영양·물 사업이 들어가 있다. 요즘 말라리아 까지 들어갔다. 보건 사업의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6가지 질병 예방접종을 시켜주는 거다. 이게 아주 큰 사업이다. 이것을 해 줘야 아이들이 죽지 않는다. 빈곤의 악순환을 방지하려면 우선 교육을 시켜야 된다. 그래서 유니세프는 각 나라가 다 6세 까지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의무교육을 시켜야 된다고 했다. 그래야만 컴퓨터 자판이라도 두들길 줄 알고 숫자도 읽을 줄 알고, 속지 않고, 빈곤의 굴레에서 탈출할 수 있다. 교육은 예전엔 학교 교육만 가지고 됐는데 이제는 학교 교육만 가지고 발달하지 않는다. 쾌적한 환경에서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또 놀이를 통해 발전한다 해서 최근엔 아프리카에 축구장도 지어주고 한다. 이렇게해서 아이들을 보듬어 안고 서로 화합시킨다. 또 아동보호는 선진국까지 다 포함된다. 왕따 문제부터 시작해 모든 위해한 것으로 부터 어린이를 보호해 주자는 것이다. 폭력으로 부터 반대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아동학대 예방이라고 해서 집에서 때리는 문제만이 있었는데, 요즘은 이것에 더해 악날해진 아동 노동 문제, 그리고 매춘 문제가 있다. 일본같은 나라가 문제가 많다. 그 다음 아동 납치라 해서 요즘 키워드가 돼 있다. 취직을 어느 나라에 시켜주겠다 얘기하고 아이들 사고 파는 문제 말이다. 한국에 러시아 아이들 많이 오는데, 처음엔 댄서로 오는 거라 했는데 매춘으로 집어넣고 아이들 밀거래하는 문제다."

이날 유니세프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것은 박 부회장의 설명 중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유니세프 자체가 아니라는 말에서 였다.

"한국위원회는 유니세프 자체는 아니다. 모든 시스템은 유니세프의 시스템을 가지고 쓰고 있고 유니세프는 유니세프지만, 하나의 파트너다. 우리가 유엔 자체는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벌어서 유니세프에 준다."

한국위원회의 모금은 개인을 통한 모금이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다.

"금년에 9백여 억원을 했는데, 그 중 기업에서 벌어들인 돈은 5%도 안된다. 개인이 한게 85% 이상이다. 나머진 행사인데, 행사는 그냥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앙드레 김과 해마다 했었다. 작년에는 5천400만이었는데 이같은 액수는 처음이었다. 일년에 이렇게 늘어난 것이다. 1994년 부터 2011년 까지 3천282억이고 올해(816억)까지 합치면 4천116억을 보냈다. 이는 80%에 해당하는 금액을 말하는 것이고 총 액수는 5천145억이 모였다. 첫해에는 32억 벌었었는데, 말도 못하게 발전하고 있다. 이제 자리 잡았다. 우리는 공적인 기관이지 개인 것이 아니다."

한국위원회는 몇 년을 도움 받았는지 물었다.

"43년을 도움 받았다. 유니세프는 그 나라 정부가 안하겠다고 하면 사업을 못한다. 도와주겠다고 해도 그게 아니다. 1950년 3월 25일 정식으로 유니세프 대표하고 우리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본협정을 체결함으로 시작을 했고, 제가 사회개발 사업을 시작하려는 차에 6.25가 터졌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1994년 1월 1일까지 43년을 도움 받았다."

'아우(AWOO)인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자 박 부회장은 어린 소녀로 돌아가는 듯했다.

"아우인형은 '아우르다'는 뜻이 담겼다. 아우인형이라는 프로그램 대단하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했는데, 인형을 만들어 준다. 많이 나갔다. 상징성이 있다. 뭘 상징하냐면 아직도 무지와 가난으로 1년에 출생 신고가 안된 아이가 5천만 명이다. 우리가 하는 것은 출생신고 시켜주는 것이다. 이런 모형을 떠서 하나 만들어주면 출생신고를 시켜주는 거다. 처음엔 2만 원에 입양하다 3만 원에 입양하도록 했다. 지금 기업체에서 6백만 원 어치를 사갔다. 어린이날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디자인체험을 하기도 했다. 김연아도 후원금과 함께 아우인형을 전달하기도 했다."

아우인형 만들기는 유니세프가 빈곤국가 어린이들을 홍역, 소아마비 등 6대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펼치는 '헌 옷 인형 만들기' 사업이다. 이 사업은 나라마다 고유의 명칭을 붙여서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동생', '아우르다', '아름다운 우리' 등의 뜻이 담긴 '아우인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있기도 하다. A4로 25만 부를 찍고 있고 도우너들에게만 주고 있다고 한다.

박 부회장은 한국위원회의 기업 모금 활동에 대해 들려줬다.

"현대차가 작년에 5억인가 했다. 작년에 기업에서 30억을 받았다. 유니세프만 보고 주는게 제일 좋다. 그 다음 CRM(Cause-Related Marketing), 이건 직접 우리에게 주는게 아니라 예를 들어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는 승객들한테 여행갔다 올 때 봉투를 내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체인지 포 굿(Change For Good)이라고 해서 따로 가지고 있고, 1년에 모금함 돌리고 해서 아시아나에서 8억이 나온다. 또 스폰서쉽이 있다. 이렇게 세 가지를 가져간다."

CRM이란 '공익연계마케팅' 즉, 마케팅 활동을 공익과 연관시키는 '대의명분 마케팅'을 말한다.

대화의 시간이 흘러가며 박 부회장은 몇해 전 세상을 떠난 고(故) 박완서, 앙드레 김에 대한 애정어렸던 마음도 내비췄다.

"박완서, 앙드레 김을 다 잃었다. 제 오른팔, 왼팔이었다. 2010년에 앙드레 김, 2011년에 박완서가 떠났다. 이들이 참여할 땐 MBC도 필요 없었다. 직접 다 했다. 이제 안성기 씨가 남아있고, 신경숙 씨는 글로 도와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이름있는 사람보다도 그냥 일반 회원들 다 참여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박 부회장은 총 14개의 단체와 아동 전문가들이 참여해 발족시킨 유엔아동권리협약 한국비영리기구(NPO) 연대 창립총회에서 초대 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홍보대사 안성기 씨가 지난 2007년 우간다 굴루지역 산타모니카 직업학교를 찾아 교육생 소녀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NPO는 아동을 위해 일하는 단체다. 여기에 공동 대표로 있다. 14개 단체가 들어오는데, 메이저가 있고 작은 단체들도 많다. NPO 실력 대단하다. 행정안전부와 경제인연합회와 같이 회의한다."

과거 신문기자 시절과 강사 시절, 그리고 대한가족계획협회(현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에서 홍보부장으로 일하던 시절 얘기도 들려줬다.

"제가 신문사 다닐때는 엉터리였다. 그때 좀더 잘했어야 되는데. 동아일보에 9년이나 있었다. 그러다 미국 갔다와서 성대 법정대학에서 1972년 유신 때부터 1975년까지 숙대하고 같이 3년 강사했다. 그때가 제일 시간이 많았다. 조카들 데리고 수영도 다니고. 성대 법정대학에 신방과가 있었고 숙대에서도 시사 영어 가르켰는데, 저는 교수학 받지도 않았고, 공부 파고드는 타입도 아니고 해서 교수의 길로 가진 않았다. 가족계획 홍보부장 때는 일에 미쳤었다. 홍보부장 12년 하다가 40대 때에 훈장도 받았다. 그땐 일요일도 없이 참 열심히 일했다. 여기에는 1988년 때 왔다."

박 부회장은 동아일보 공채 1기 출신이며, 9년 여간의 기자 생활을 거쳐 1976년부터 미혼여성으로서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 홍보부장을 지냈다.

대학 강사 경험이 있는 박 부회장인지라 요즘 방송 윤리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몇 억 명이 듣는 방송을 누가 결정하느냐. 몇 사람 손에서 결정한다. 들어야 될 것과 안 들어야 될 것을 말이다. 이것 문제점이 많다. 방송, 드라마 보면 막장 드라마 나오는데 드라마 수를 좀 줄여야 되는데 지켜지지도 않는다. 내가 방송 윤리를 강의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 균형이 깨졌다. 너무 오락 프로그램이 많다. 틀면 쿵짝거리고. 참 문제다."

박 부회장은 대화 막바지에 유엔에 대한 문제점도 살며시 언급하기도 했다.

"유엔이라는 곳도 문제점이 많다. 농협과 마찬가지로. 하도 비대해지니까 개혁을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박 부회장은 유니세프의 모금 활동에 대한 원칙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저는 모티베이션을 주고 스스로 하게 한다. 자발적으로 개인이 내는 게 제일 좋은 시스템이다. 이게 하루 아침에 쌓여진 건 아니다. 모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옛날엔 30% 됐었는데 지금은 10% 내외다. 펀드레이징(Fund Raising)도 대단히 프로페셔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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