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0.7.9 목 09:36
> 뉴스 > CUFS 人side
     
"Let's go!"의 주인공, 이길영 교수님을 만나다!
2011년 05월 20일 (금) 한나경 기자 skrud2000@nate.com

“Let's go!”의 주인공,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이길영 교수님을 만나다!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뿐 아니라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이길영 영어교수님. 늘 밝고 힘차게 수업을 진행하시어 사이버상에서도 그 열정이 느껴지는데요. 행복 에너지, 이길영 교수님을 샅샅이 알아봅니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사이버한국외대에서 초급영어회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외대 사범대 영어교육과와 대학원에서 도 강의하고 있고요. 또 한국외대 테솔전문교육원장 일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집안에 선생님이 네 분이나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태어난 곳도 시골 초등학교 사택이었죠. 그래서 교육자의 호르몬이 내 몸 속에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추석이나 설날에 집안 식구 모이면 자연히 어른들로부터 ‘학교’, ‘교육’, ‘선생님’ 이러한 단어들을 어릴 때부터 자주 듣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범대 영어교육과에 진학을 하였지요.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교수님 모습.

그러나 사실 초등학교 때 꿈은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였습니다. 기차만 보면 저는 흥분을 하였고 기차 타고 시골 가는 것을 무척 좋아했지요. 고등학교도 철도고등학교를 가야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습니다. 영어교육과에 진학하고 나서도 그 꿈을 못 버려서 부전공으로 행정학을 했습니다. 기관사가 될 수 없다면 나중에 서울역장이라도 되겠다고 생각해서였지요. 하하…

   
고교 1학년 때.

지금도 기차는 무척 좋아합니다. 외대에 오기 전에 대구에서 5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일이 있어 서울에 갈 때면 종종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나중에 마일리지 현황을 보니 일 년에 110회를 기차를 탔더군요. KTX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무궁화호를 타면 4시간 넘게 가야 하는 때였습니다. 그래도 싫증 없이 정말 잘 탔습니다.


이번에는 교수님의 가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미국 요세미티에서 사모님과 교수님.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두 아들이 있습니다. 아내는 교회 청년부에서 만났고요. 순수하고 바른 처녀였던 것 같습니다. 제게 과분한 사람이지요. 큰 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고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큰 아이는 조금 조용한 스타일인데 작은 아이는 매우 적극적인 성품입니다. 운동을 엄청 좋아하네요. 아들만 둘이어서 저와 함께 셋이서 뭉쳐 이부자리 위에서 레슬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큰 아이보다 작은 아이가 먼저 사춘기가 온 것인지 요즘 재미있는 것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야옹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얘는 정말 조용한 아이지요. 먹이 달라고 떼 한번 안 쓰는 아이입니다. 늘 조용히 자기가 알아서 모든 것을 합니다. 미국에 연구년 1년을 다녀올 때도 함께 갔다가 함께 왔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금문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시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한데요...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졸업이 되기도 전에 대기업에 들어갔습니다. 세계를 품는 대기업 종합상사 맨으로서의 꿈을 가지고요. 당시 종합상사가 아니면 해외무역을 할 수 없던 때여서 많은 졸업생들이 종합상가에 가려고 했지요. 당시 종합상사는 8개 대기업에만 계열사에 허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합상사 회사생활을 하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제 평생의 일이 될 수 없음을요. 3개월 만에 나오고 광고회사 AE로 생활을 하다가, 이후에는 다국적기업인 어느 외국계 회사를 다니다가 결국 학교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는 비로소 마음의 안식을 찾았습니다. 아까 호르몬 말씀을 드렸는데 드디어 제 본향으로 가게 된 셈이지요. 총각으로 여고의 영어교사가 되었습니다. 아마 대한민국의 남성들 가운데 정말 저는 잊지 못할 추억을 가진 흔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무지개 빛 추억입니다. 그 때가 80년대 후반인데요.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가 그리 발달되지 아니한 때였고 남녀공학이 전국에 몇 학교 이외에는 없을 때이니 총각선생님의 인기가 정말 남달랐단 것 같습니다.

   
1989년, 이화여고 영어교사 시절.

그 때의 제자들이 이제 마흔이 되었어요. 세월이 그렇게 빨리 지났나 하는 생각을 그들을 통해서 해 봅니다. 가끔 제자들 모임에서 만나기도 하는데 새록 새록 그 때 생각은 재미있는 추억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으로서 정말 보람도 많았고요.


밝은 성격을 이어나가는 데에 노하우가 있으시다면요?
긍정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대학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요. 어떤 시련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어떤 레슨을 제게 주기 위하여 이 시련을 주시는 것이라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자 합니다. 힘들 때에는 아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지요. 

   

또 주변의 산을 자주 봅니다. 어릴 때부터 사는 곳 주변에 북한산과 도봉산이 있었어요. 이제 그 산을 보면 제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워낙 친숙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것을 통해서 힘을 얻을 때도 있지요.

어릴 때도 영어를 잘하셨나요?

중학교 때 처음으로 ABC를 배웠습니다. 중1 겨울방학 때 혼자 문법책을 두 번 본적이 있는데 그것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고등학교에 가서도 그 지식이 있으니 큰 문제 없더군요. 중학교 때에 영어가 좋아서 중2 때로 기억됩니다만 한 학년에 두 분의 영어선생님이 계셨는데요. 다른 반에 들어가시는 영어선생님은 그 반에서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궁금하여 그 반의 영어수업 시간표를 미리 알고 있다가 수업시간 종료와 함께 그 반에 가서 영어선생님이 남기신 칠판글씨를 보고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훑어보고는 했습니다. 영어가 재미있었습니다.

   
패널 좌장을 맡았던 2007년 한국응용언어학회, 숙대에서.

교수님에게 있어 영어란?
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 준 과목입니다. 그런데 영어는 하면 할수록 어렵고 난이도는 높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떨 때는 절망하는 때가 있지요. 그러나 세계와 소통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흥분되는 도구입니다.

   
사회자로 참석한 2004년 한국응용언어학회.

영어공부 팁을 하나만 알려주신다면요?
현대인의 바쁜 생활 속에서 영어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성 있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이 상황에서 영어로는 뭐라고 할까 하는 스스로의 질문을 자주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관심이고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이 있으면 바로 바로 해답을 찾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필요가 있어 알게 된 지식은 좀처럼 안 잊어버리니까요.

   

강의를 하시면서 재미난 에피소드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이번 학기에 한 학생이 제 강의가 ‘동화나라’라고 하며 제가 그 동화나라의 주인공이랍니다. 하하... 처음 듣는 말이지만 그만큼 친근감 있는 강의라고 학생분 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온라인 강의여서 얼굴을 서로 마주할 기회가 많지 않음에도 이런 친근감이 느껴지니 저 또한 기쁘지요.

 
   
사이버한국외대 광고에 실렸던 교수님의 모습.

공부하는 학생들을 관리하실 때 특별히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저는 강의시작 전에 동영상에서 보면 ‘Let's go!’ 하고 외칩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강의를 듣는 학생 분들을 생각하면 지루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함께 으쌰 으쌰 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합니다. 서로 얼굴도 못 보는데 공부가 재미있어야 그나마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또 제 주변의 사적인 이야기를 때때로 올리기도 합니다. 예전에 제가 첫 주례를 서기 전에 떨리는 제 심경을 올리고, 또 어떻게 주례를 했는지 후기를 올리기도 했는데요, 학생분들의 반응도 재미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자기계발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교수로서의 자기계발은 학회 활동하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일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영어교육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고 또 한국응용언어학회 부회장을 하고 있습니다. Asia TEFL도 나름 열심히 하는데요. 이 학회는 특별히 아시아 각 국의 학자들과의 교류이기에 각 국의 상황 등을 배울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지난 일본 대지진 때에는 서로 안부를 묻고 챙겨주기도 했습니다.

   
2007년 말레이시아에서 있었던 Asia TEFL 학회 리셉션에서.

또 지금은 쉬고 있지만 사회인야구를 합니다. 2루수에 2번 타자로 시작을 했는데요, 점점 젊은 사람들이 충원되면서 이제 7번으로 밀리게 되네요. 하하... 이제 50이니 제가 팀 내에서 최고령입니다. 올해는 너무 바빠 시간을 내기가 어렵습니다만 언제라도 그라운드에서 뛰기를 바라고는 있습니다.

 
   

 

교수님의 최종 꿈과 비전은?
교수직을 마치고 은퇴 후에 혹 제 3세계에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가고 싶습니다. 인생을 돌아보고 또 그 곳 사람들을 도울 방법이 있다면 돕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학생들과 함께한 수련회에서.
 

마지막으로 사이버한국외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전해주세요.
2002 월드컵 때에 ‘꿈은 이루어진다’ 라는 말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입니다. 얼마나 큰 소망이 있는 말인지 알 수 없어요. 소망이 있으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만 소망자체가 없으면 아예 가능성이 없겠지요?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시작하신 여러분들의 각각의 소망을 향해 올 한해도 조금씩 앞으로 진보하기를 기원합니다. 
 

   
교수님 연구실에서 한 컷!

ⓒ 미네르바(http://www.cufsminerv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로 107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02450) | Tel) 02-2173-2580 Fax) 02-966-6183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조기석
Copyright 2004 Cyber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nerva@c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