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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야 했던 또 다른 이유
윤정실 학우편(중국어학부)
2007년 05월 01일 (화) 박복진 편집장 korimex@korea.com

미네르바 학보 편집회의 때 우리는 무엇인가 아름다운 이야기, 무엇인가 학우들에게 가슴에 와 닿아 새로운 삶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꼭지를 신설하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등하불명(등잔 밑이 어둡다) 이런가? 그 주인공은 바로 우리 미네르바의 명 기자, 중국어 학부 윤 정실 학우이었다.

선행을 맨 처음 시작할 때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것으로, 나도 아직 부족한데 내가 누굴 돕겠다는 이야기인가? 라는 자기 질문을 해보셨는지요. 라는 기자의 첫 번째 질문은 그래도 좀 괜찮은 편에 속했다. 다음 질문으로, 정말로 선행을 하시고 계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었다. 우리 사이버외국어대학교인은 그 누구보다도 더 잘나야 되고 더 확고한 주관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믿는 바에 대해 보통의 남보다 더 떳떳해야 됨으로...


질문:
나의 선행을 남에게 알릴 때 맞닥뜨리는 것이, 이렇게 이 사실을 알리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에게 알리지 말라했는데 그러면서도 알리기로 한 것은 어떤 연유이던가요?

답변: 누구나 처음으로 타인을 돕고자 했을 때의 갈등이란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은 것은 무엇일까? 섣불리 시작한 선행이 꾸준히 이어지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면 어떻게 할까? 저 또한 이런 갈등을 갖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경험을 해 보고 느낀 것은, 선행은 습관이며 유행이고, 전염성이 강한 행복한 고질병입니다. 선행의 기쁨을 맛 본 이는 결코 이 인연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답니다. 마라톤의 벅찬 기쁨을 느끼고 중독이 되면 결코 42.195km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듯 말이죠.

선행이란 그렇게 고양이 걸음처럼 사뿐사뿐 조용히 실천해야 하는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행은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하는 삶의 과제란 것을 삼십이 훌쩍 넘어서야 느꼈던 것입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분명 있습니다. 참 진부한 말 같지만 전 행복한 사람입니다. 적어도 전 부모 슬하에서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누리며 가끔은 여유도 부리며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이들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 힘이 저 혼자만으로는 부칩니다. 그래서 이제부턴 입이 닳도록 알리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저의 글을 보고 동요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작은 선행도 베풀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지금 저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의 의무는 갖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속하지만 기자는 더 집요하게 물었다.


질문: 나름의 확고한 생각이 있습니까? 계기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가족이나 지인이 그런 고통을 받고 있어 대리 치유를 한 것입니까?

답변: 가족 중에 고통을 받았던 이도, 아픈 기억이나 상처로 누군가를 돕기로 마음먹었던 것도 아닙니다. 아주 우연하고 오래된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제게는 오래된 남자 친구가 있습니다. 마음 잘 맞는 친구지요. 그 친구와 전 노후를 함께 꿈꿉니다. 결혼할 사이라는 것이지요. 남들은 노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재테크를 꿈꾼다지요. 저희도 행복한 노후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긴급 구호 단체인 월드비젼에 들어가는 일이지요. 이 일만이 머리가 희끗희끗해 지기 전, 진정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이란 걸 우린 서로가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의 노후는 그곳에서 보내기로 했답니다. 지금은 연세 많으신 부모님 봉양하며 주변에서 선행을 베풀고, 나아가서는 좀 더 국제적으로 일을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멋집니까. 이런 꿈을 꾸고 있는 우린 참 행복합니다. 타인에게 선행을 권유할 때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가슴을 콩당거리게 만드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내가 살아야 했던 또 하나의 이유라는 글을 간직하고 있던 정말로 아름다운 우리 윤정실 학우의 선행 사연은 이렇게 해서 미네르바에 그 수줍은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2004년 겨울. 인연이 닿지 않을진데 내 어찌 그 청초하고 맑디맑은 지연이를 만날 수 있었을까. 어느 날 저녁 뉴스 끝자락에 들려오던 아나운서의 목소리. “아픈 자녀의 앞날 걱정에 시름 거둘 줄 모르는 가정이 있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난 인터넷에서 MBC 방송국을 찾아 그 영상기사를 쓴 기자를 알아냈고 해당 사회복지사로부터 많은 정보를 알아 낸 후 그 집에 함께 찾아가 아저씨와 지연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연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지연이는 숭실대학교 전산학과 1학년에 합격하자마자 갑작스럽게 뇌종양 판정을 받고 집에만 있게 되었다. 내가 3년 전 만났을 당시 지연이는 24살이었다. 바깥나들이를 삼가 해 온지 오래되어 하얗고 핏기 없는 얼굴에 항암제 투여로 부어 있는 몸... 그래도 나를 향해 침대 위에서 웃고 있었던 그 얼굴은 맑기 그지없었다.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참 투병 중일 때 어머니는 가출, 남동생은 군 입대 그리고 한달 약값만 해도 150만원. 투병 생활 4년차에 집이고 뭐고 남은 것이라곤 정부에서 지원해 준 임대 아파트 한 채. 그런 지연이에게 다급했던 것은 ‘사랑’이전에 치료를 할 수 있는 ‘약값’과 ‘치료비’였던 것이다. 전기도 다음달이면 끊기고, 도시가스는 이미 끊겨 방바닥은 온기를 잃은 상태. 난 아저씨의 손을 잡으며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아저씨, 제가 큰 도움은 되어 드리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약속드릴께요. 지연이가 완치되어 건강한 생활을 할 때까지 임대료는 제가 내드리겠습니다. 약값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청해서 지연이를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음날, 곧장 50만원을 보내고 매달 나는 임대료를 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연이를 도와 달라는 편지 한 장을 복사해 우리 학우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앞장서서 도와 준 학우는 중국어학부 임도영 전회장님과 류민숙 언니였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그 외에 또 우리 회사에서 걷게 된 100만원 남짓의 성금들... 세상은 아직도 따뜻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 시간들이었다.
아저씨의 통장으로 3년여 매달 임대료를 내 줄 때의 마음은 투병에서 이기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였지만 작년 가을에 지연이가 갑자기 마지막으로 내 곁을 떠나가던 그 순간도 난 그 간절한 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다.

2006년 10월 29일 지연이는 하늘나라로 갔다. 그리고 가출했다는 지연이의 어머니로부터 다음 말을 들었다. “지연이가 정말 좋아했어요. 그리고 핸드폰에 천사 언니라고 해 놓았더군요. 너무 고마워요. 지연이가 집 밖에서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정실씨였을 거예요.”

투병 생활을 해 왔던 지연이의 하루는 참 길었다. 내가 생각 없이 보내 온 하루 보다 훨씬 더 성숙한 하루를 살았을 지연이에게 이별이 슬펐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살아내지 못한 삶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슬퍼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아주 나중에서야 지연이가 이야기한 말을 되새기며 느낄 수 있었다. 지연이를 만난 그 시간들은 내가 살아야 했던 또 하나의 이유였다.

‘아름다운 사이버외국어대학교인’ 또 다른 감동 사연은 미네르바 다음 호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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