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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야 할지, 뻔히 보이는데 움직이지 않는 다면 그것은 바보 아니겠습니까?"
일본어학부 2학년 휴학생 권한얼 학우
2007년 06월 01일 (금) 박찬 기자 joanstrife@cufs.ac.kr

모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패션7080'이라는 코너가 최근까지 인기였다. 말도 안되는 옷들을 걸치고 나와 그것이 최신 트랜드라면서 억지를 부리며 웃음을 선사했고 내복 차림으로 지하철과 압구정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닐던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우리는 개그를 보고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무작정 있어 보이는 서울 생활에 대한 동경과 명품 지상주의와 같은 '겉'을 중시하고 열광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향한 독특한 표현의 경고와도 같았다. 젊음. 그것은 '더 많은 기회'를 뜻하기도 하지만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서 '철부지'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젊음은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특권임에는 분명하기에.

사이버외국어대학교 일본어학부의 명물인 2학년 휴학생 권한얼 학우는 올해 26세. 많은 어려움 속에 일본 유학길에 곧 오를 그는 어른일 수도 있고 아직은 어린 철부지 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많지 않은 나이에 그는 많은 사회 경험을 스스로 자청했고 그로 인해 배운 것도, 생각하는 관점도, 외모도 남다르다. 그는 겉멋이 제일이 되어버린 세대의 시대에서 멋을 마음껏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요란스럽다'거나 '나이와 맞게 하고 다니라'는 말을 듣는 것은 그에겐 일상다반사다. 그래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왠지 모르게 느껴진 자신감으로 인해, 자부심 넘치는 그의 삶을 들어보고 싶어졌다.
 

▶ 평소에 추구하는 패션에 남다른 센스가 있는데 지난 번 동행했던 결혼식에서도 항상 같은 패션이더군요. 혹시 상황이나 나이에 비해 요란하다는 말을 듣지는 않는지요?

우선 저는 남다른 패션감각을 지니지도 않았고 스스로도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결혼식 때 복장이 평소와 같다고 해서 그것이 상황에 맞지 않는 복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평소에 제가 입는 스타일은 비싼 옷도 아니고 사실 별 것 아니지만 단지 몇 개의 액세서리만 추가할 뿐입니다. 저는 자기 자신을 자신의 소신대로 꾸밀 줄 아는 것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자기관리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가장 쉽게 즐기며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우리나라의 남성들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쇼핑을 나가보면 항상 즐비한 것은 여성복이고 남자들이 깔끔하거나 또는 패셔너블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은 정말 찾기가 힘이 듭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거죠. 누구나 남자들이 한번쯤 입어보고 싶은 옷, 그런 것을 찾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설령 그러한 패션 아이템이 널렸다고 해도 아무도 시도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가끔은 여성들의 절대적인 권리'라는 편견의 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런 생각들이 안타깝습니다. 단순히 패션이 어쩌고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남성들이 너무 빨리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가끔 여자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할 정도니까요. 말씀 드렸듯이 전 그냥 액세서리 몇 개 더 하는 정도가 전부이지만 그 작은 노력이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된다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점에 널린 남성 잡지만 봐도 자기를 어떻게 꾸미는지 아주 간단하게 알 수 있는데 서점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선 우연이라는 매개가 필요할 정도로 남성들에겐 최소한의 자기관리를 접할 수 있는 개인적 또는 대중적인 관심이 없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하고 싶다 내지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저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귀찮아 한다는 것' 단 하나가 차이일 뿐이고 그것이 저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명품을 하나 걸치면 마치 자신이 한층 더 돋보이는 것 같은 환각을 느끼고 명품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패션 아이템 중에 명품은 과시가 아니라 자기만족이 아닐까요? 명품 칠갑을 하고 거리에 나가 봐야 사람들이 봐 주는 건 내가 아니라 역시 명품일 테니 말입니다.

그는 우리가 느끼는 단순한 '특이한 캐릭터'는 아니었다라는 생각이 들 무렵 또 다른 질문들이 번뜩 번뜩 떠오르기 시작했다. 


   
▶ 그것은 분명 확실한 소신을 지키는 것인데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데 지표가 될만한 계기를 만들어 준 좋은 일, 또는 나쁜 일이 있었는지?

그 때가 벌써 7년 전이네요. 대학에 어렵사리 합격했었지만 곧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대학 공부보다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뭔가를 찾고 싶었지요. 그래서 처음 시작한 것이 서비스 업종의 일이었습니다. (유흥업소 말구요. ^^;) 사실 굉장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조금 철학적으로 고객과 고객을 모시는 입장의 관계, 즉 대립과 존중이 무한대로 오가는 장소가 서비스업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더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우리나라에서 이미지 마케팅에 성공한 모 프렌차이즈 카페에 직원으로 들어가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죠. 하지만 곧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획기적인 이미지 마케팅으로 고객에게 특별하고 특이함을 주는 것에 그 회사가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규모가 크다 보니 고객은 곧 돈이며 직원은 곧 일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 정도로 오너에게 여겨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일하는 동안 무한 반복으로 들기 시작했죠. 물론 이런 생각은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직원들에게 수동적 즉 기계적으로 일할 것을 주문하고 '남들은 다 하는데 넌 왜 못해?'라는 식으로 한계치를 시험하는 듯 하는 것에 염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죠. 이미지 마케팅으로 인해 카페의 컨셉트는 깔끔한 서비스와 들르는 고객들의 시각적인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지만 회사가 겉으로 늘 고객 중심의 운영철학을 외치면서도 안으로는 일하는 즐거움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사회생활 중에 느낀 가장 좋지 않았던 기억으로 생각됩니다. 지금도 역시 회사든 학교든 그 어떤 조직이든지 간에 권력과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쪽이 그렇지 못한 쪽을 존중하지 못하거나, 외침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권력을 가진 쪽이 반드시 행사하여야 하는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대해 나는 뭐라고 답하여 대화를 계속 이어줄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그리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대포 한 잔 기울이며 동료들과 나누곤 했던 대화의 내용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던가. 그의 생각은 그저 젊음에서 비롯된 귀여운 반항일 수도 있었다. 그의 생각이 여기까지 밖에 미치지 못했다면 말이다.


▶ 젊은 나이라 그런지 흔들림 없는 의사의 전달이 확실한 것으로 알고 있고, 학부의 일에도 악역(?) 또는 조언자의 역할로 늘 열심히 동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이기는 하지만 살아가며 적극적인 성격으로 인해 생겼던 해프닝에 대해 얘기해 본다면요?

어디서 이런 말을 한 적은 없는데 '생각이 없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굉장히 어둡고 폐쇄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거든요. 하지만 이 글을 보시는 '성격 좋으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원래 자신이 좋은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을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입니다만 - 과거 대한민국 사회의 특성상 대부분이 자신의 어두운 모습을 극복하기 위함도 아닌 커버하기 위한 수단으로 '낙천적'인 성격을 어쩔 수 없이 배우게 된다는 것을요. 저도 역시 그랬고 워낙 밝고 항상 들떠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특별히 성격으로 인해 겪었던 해프닝은 없습니다만 어른들로부터 '가볍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하지만 나이가 어림으로 인해서 말과 생각에 무게가 없다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것은 앞서도 말씀 드렸던 '존중'에 대한 것과도 통합니다. 어른들께는 정말 배울 점이 많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을 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혈기 때문은 아니며 누구에게 피해를 주기 위함도 아니고 생각이 가볍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라고 한번쯤은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다른 내용의 질문입니다만 일본어를 배우는 것이 인생의 목표 또는 다른 어떤 것들과 연관이 있습니까?

예전에는 만화를 그리는 것이 취미였는데 일본만화도 많이 보다 보니 그 때 처음으로 일본어를 접했습니다. 하지만 만화가 제 목표는 아니구요. 얼마 전 학부 선배님의 도움으로 난생 처음으로 미용을 배우게 되었는데 제 평생에 이것만큼 재미있었던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용 선진국인 일본에 장기간 유학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보다 본격적으로 미용을 배우기 위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사실 주변의 반대가 심해서 굉장히 애를 먹었습니다. '권한얼이는 일본에 가면 물 만난 생선이 된다' 또는 '일본에서 그에겐 공부란 없다'는 둥 걱정 섞인 이런 저런 반대들이 쏟아졌는데 저는 제 목표가 선명하다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지금 제 인생이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라고 한다면 능력 있는 미용사가 된다는 제 목표는 저 멀리 슬쩍 슬쩍 보이는 등대와도 같으니까요. 어디로 가야 할지 뻔히 보이는데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보 아니겠습니까?


 확실히 또래보다는 생각이 남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까지 해 주신 말씀이 단순한 젊은이의 對 사회적인 충동적 반항일 수도 있는데 본인께서 직접 생각하시는 또래 젊은이들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은 어떤지요?

단호하게 말씀드리는데 젊은 사람들은 생각이 너무 없고 어른들은 희생을 너무 요구합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간간히 눈에 띄는 정도의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런 미꾸라지 한 마리가 도랑 전체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니까요. 젊은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고 이유가 없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자신을 투자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제 또래의 남자들이 군대를 마치고 취업을 하게 되면 평균 27~28세의 그저 젊지만은 않은 나이가 됨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2~3년을 더 공부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률 사상 최악'이라는 뉴스 기사는 매일같이 접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젊은이들은 '일을 한다'는 개념이 아닌 '돈을 번다'라는 자본주의적 개념에 전전긍긍하면서 취업에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는 회사, 복리후생이 좋아 일하기도 편하면 금상첨화인 그런 직장을 구미에 맞게 선택해 가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막상 몸을 던져보면 그것이 매우 힘든 일임을 알게 되고, 학교 생활만으로 인해 미쳐 적응이 되지 못한 사회의 쓴맛을 원 없이 보게 되면 대책도 없이 얼른 그만둬 버리고는 합니다. 그리고는 정문을 나서면서 이렇게 착각하지요. '나 정도면 이런 회사쯤이야 언제든지' 상사가 일을 못해서 홧김에 나가라! 한마디 하면 자기가 일을 못해서 그런 것을 모르고 '제가 왜 나가야 되는데요?' 라고 반문하며 제 무덤을 파거나, 자기가 입는 약간의 손해도 용납하지 못하고 항상 이유를 요구하며 '내가 왜 이걸 해야 되는데요?' 라고 말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너무 창피합니다. 하지만 회사가 싫으면 나가라는 둥, '요즘 것들은!‘ 이라는 둥 말하는 어른들도 별 다를 바 없습니다. 미꾸라지 한두 마리가 물을 흐리는 것을 보고 전체를 결론지어 버리는 것은(사람이 다 마찬가지지만) 특히 어른들의 주특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른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저 어린것들과 효과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은 '나이도 어리니 그냥 하라'는 희생을 요구하는 것뿐입니다. 나이가 적기 때문에 알래야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아닌, 나이에 상관없이 옳고 그름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와 존중이 편견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년 전, 내가 권한얼 학우의 시기에 있었을 때 나는 저렇게 까지 눈빛 하나 흐리지 않고 소신을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주는 말과 주는 것에 그저 불만 없이 내가 겪고 바라보는 것이 좋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데 나에겐 그것을 이 사람처럼 아닌 것은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던 배짱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지금은 어떤가. 나는 나를 사랑하여 나의 소신과 목표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상사의 울음소리 섞인 소신에 나를 던지며 살아가고 있는지...

6월이 오고 며칠이 있으면 스스로도 돌아올 날을 기약할 수 없는 동안의 유학길에 오르는 그는 마치 훈련소 입소 전의 두려운 눈빛을 한 아기 사병이 아닌, 마치 곧 전역하는 관록과 요령이 넘치는 꺾인 병장 같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기에 필자는 걱정 섞인 말 한마디 않고 담뱃갑에 남아 있던 두 개의 담배를 나누어 태우며 그냥 웃었다. 나중에 일본 어딘가에서 술병 나발을 거하게 불어보기로 약속하며.

특별한 사람만 나이를 먹는 것은 아니니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누구나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였고 자신을 얼마나 세상에 자랑스럽게 드러내며 외쳤는지 훗날 습관처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을 때 답답함이나 한숨 대신 미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의 그런 선명한 생각들이 박수를 보내며 일본 유학으로 더 많은 기회와 가르침을 얻기를 다시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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